마음의 혁신
20200117
마음의 혁신
20200117
본문 / 잠언 4:20~27

20.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
21. 그것을 네 눈에서 떠나게 하지 말며 네 마음 속에 지키라
22. 그것은 얻는 자에게 생명이 되며 그의 온 육체의 건강이 됨이니라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26.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27.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본문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매우 귀한 말씀이요 중요한 말씀입니다.
마음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합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작은 일에도 염려하고 근심합니다. 작은 일에도 놀랍니다. 큰 일이 있으면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큰 일을 당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데려가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거국적인 일입니다. 그러니 여호수아가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에서 40년 동안 시종 노릇을 하며 열심히 심부름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는 역사의 전면에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가야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가를 옆에서 본 사람은 압니다. 모세가 산전수전을 다 겪는 것을 여호수아는 모세의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험난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야 하는 여호수아는 얼마나 떨렸겠습니까.

여호수아 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1:5~6)”,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1:9)”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마음을 준비시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마음을 단단히 무장시키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서 많은 일을 만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단단히 무장되어있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습니다.
리더는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가정의 리더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마음이 강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눅 17:20)”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마음에서 나옵니다. 기쁨을 유지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넘치면, 어떤 일도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병든 사람은 무엇을 하든 힘듭니다. 웃고 싶어 하지만, 웃음이 나오지 않습니다. 웃는 사람을 보면 화가 납니다. 웃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웃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마음이 건강한 사람은 잘 웃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입니다(잠 17:22).
하루에 10분 웃으면, 4백 칼로리의 열량을 소모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웃을 때에 평소보다 산소공급이 증가합니다. 자주 웃으면 혈액순환이 빨라져 심장병, 동맥경화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습니다.
웃으면 침 속에 있는 글로불린A가 증가합니다. 글로불린A는 바이러스의 감염을 막는 면역체입니다.

그런데 감정이 메말라버리면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화내지도 않습니다.
화낸다는 것은 감정이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화내야 하는데, 화내지 않는다는 것은 중증입니다.

심력(心力)은 영력과 연관되어있습니다. 영력이 있으면 심력이 있습니다. 심력이 있으면 영력이 있습니다.
마음이 부요하면, 천하를 얻은 것 같습니다. 환경과 조건이 좋은데,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그릇과 같습니다. 우주를 담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이 넓을 수도 있고, 한 사람도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마음이 좁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겉모습을 아무리 꾸며도, 마음이 아름답지 않으면, 사람들이 쉽게 싫증을 느낍니다. 외모를 보려고 하다 보면, 내면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혜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것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마음을 관리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다 잃어버립니다.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돈에 마음을 빼앗기면, 돈이 마음을 주장합니다. 이성에게 마음을 빼앗기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을 조절하려고 하지만, 자기 마음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습니다. 자기 마음이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죄가 마음의 주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오늘날 의학이 발달했습니다. 건강에 좋은 것이 많습니다. 사람의 수명도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심각하게 깨어지고 무너져있습니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깨어진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마음이 병들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마음 수련을 하고,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루려고 합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상하면, 마음이 흐트러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병들면, 몸도 병듭니다. 육체의 병을 고쳐도, 마음의 병을 고치지 않으면, 육체의 병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경험하는 병들은 대부분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울증은 마음의 암입니다. 구약시대에 사울 왕은 우울증을 경험했습니다.

마음의 병은 빨리 진단하고 초기에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치료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입니다. 우울증으로 인해 자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울증은 암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암에 걸렸다 해도 정신이 건강하면 복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병들면, 모든 것이 정지된 것과 같습니다.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혜자는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많은 것을 지켜도 마음을 지키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음을 지키면, 살아갈 힘이 생깁니다.

생명의 샘이 마음에서 흘러나옵니다. 생명의 샘이 흐르면 죽지 않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지킨다는 것은 매우 적극적인 행위입니다. 땅을 방치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엉망이 됩니다. 끊임없이 관리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을 방치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 공해가 대단합니다. 먼지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일 청소합니다.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에 쉽게 때가 낍니다. 영혼이 쉽게 깨어집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제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깨어져 있으면, 집으로 돌아갈 때에는 녹초가 됩니다. 염려와 근심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치지 않으면, 저녁에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힘들면 지쳐버립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듭니다. 저녁에는 녹초가 됩니다.

잠언 25장 28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을 제어하지 않으면, 집에 벽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호막이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마음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변화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껍데기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마음이 변화되어야 참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틀, 마음의 그릇이 바뀌어야 합니다. 삶의 변화는 마음의 태도가 바뀌는 것입니다. 마음의 태도가 삶을 바꾸어놓습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청진기, 초음파, 내시경 등으로 인체를 정밀하게 들여다봅니다. 숨어있는 작은 것까지 다 발견합니다.
피의 상태, 뇌의 상태, 뼈의 상태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은 몸보다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시기하고 미워하고 분노합니다. 이것을 그냥 두면 안 됩니다.

미움의 감정이 그대로 있으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불안정하게 합니다. 미움의 감정이 처음에는 작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커져 다른 감정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그대로 두면 안 됩니다.
사람을 보고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은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마음이 깨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4장 12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가면, 우리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마음에서 일어난 분노가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이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 내가 아이의 행동에 왜 그렇게 화를 내었는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나로 하여금 화낼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화내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남편 때문에 화가 나는데, 남편에게는 화내지 못하고, 아이에게 화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노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남편이 왜 미운가, 남편 때문에 화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물론 남편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자기 안에 있는 욕망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안에 있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것으로 인한 남편에 대한 분노는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아이는 희생자, 피해자가 됩니다.

미움, 분노, 시기 등의 감정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십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보면,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배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예배드리는 행동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사람의 마음을 보십니다. 예배를 드려도 마음에 우상이 있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은 살인입니다(요일 3:15).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주목하시는데, 우리는 마음을 방관하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동에 대해서도 심판하시지만, 마음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생각 하나라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말과 행동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 안에 있던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에 일어나는 작은 생각 하나라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방치하면 점점 커집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마음에 있는 은밀한 것을 보여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거울을 보지 않으면, 나의 모습이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시편 139편 23~24절에 보면,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가보다 무슨 마음으로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매 순간 우리의 마음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하시고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보십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하여 마음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씨를 뿌릴 때, 밭이 중요합니다. 밭의 상태가 좋지 않으면, 씨가 아무리 좋아도 소용없습니다. 옥토에 씨를 뿌려야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말씀을 받을 때, 마음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상처가 있는 상태에서 말씀을 받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마음에 제대로 스며들지 않습니다.
상처와 말씀이 함께 있기 때문에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은 은혜 받기 어렵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은 말씀을 왜곡시켜 받아들입니다. 말씀이 말씀으로 뿌리내리기 어렵습니다. 말씀이 열매 맺지 못합니다.

옥토와 같은 마음 밭에 말씀이 떨어져야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음 밭의 상태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받기 전에 마음 밭을 옥토같이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회개가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회개가 없는 시대입니다. 말씀을 받아도 말씀이 마음에 깊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돌밭이나 가시떨기 위에 떨어진 씨앗처럼, 싹이 나오는 듯하다가 없어져 버립니다.
마음 밭이 옥토같이 되려면, 마음 밭을 기경해야 합니다. 마음 밭을 기경하는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회개를 통해 영혼이 촉촉해져야 합니다. 회개를 통해 깨끗해진 심령은 스펀지와 같습니다. 말씀이 빨려 들어갑니다. 그래서 어마어마하게 은혜를 받습니다. 말씀이 떨어지면, 백 배의 결실을 거둡니다.
씨앗이 하나 떨어졌는데, 백 배의 결실을 거둔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므로 옥토와 같은 마음 밭이 주는 영향력은 놀랍습니다.

오늘날에는 회개하는 신자, 회개하는 교회를 보기 힘듭니다. 이 시대의 답은 하나입니다. 가정과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은 하나, 회개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회개가 없습니다. 기도가 없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딜레마입니다.

자신의 죄를 봐야 합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면, 십자가를 통해 회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기경됩니다. 기경된 마음에 말씀이 떨어지면, 말씀이 결실합니다. 그래서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굳어진 마음은 치유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굳어지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마음이 치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마음이 치유됩니다. 수가 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만나면,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람은 더 큰 사랑을 받으면 상처가 치유됩니다. 형제 사이에서 받은 상처는 부모가 어루만져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에 생긴 상처는 누가 만져줄 수 있습니까. 자녀는 부모의 마음에 생긴 상처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더 큰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농축되어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 안에 들어오면, 마음의 병이 모두 사라집니다. 세상에서는 이것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만드신 분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때, 마음의 상처가 모두 치유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회복됩니다. 옥토같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합니다. 말씀이 영혼을 흔들어놓습니다.

깨어진 마음, 굳어진 마음이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음이 옥토같이 되어 하나님께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음은 최전선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가 마음에 달렸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첫째, 듣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0절에 보면, “내 아들아 내 말에 주의하며 내가 말하는 것에 네 귀를 기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과 귀는 연결되어있습니다. 듣는 것이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무엇을 듣느냐가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않고, 쓸데없는 것을 많이 들으면, 마음은 전쟁터처럼 됩니다. 현대인들은 잡다한 소리에 민감합니다. 잡다한 소리는 차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민감해야 합니다.

지금은 정보의 홍수 시대입니다. 몰라도 되는 것, 엉터리, 거짓말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귀가 오염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져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의 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익숙해야 합니다.

둘째, 보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5절에 보면,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보는 것과 듣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보는 것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은 유혹의 통로가 됩니다.

과거에는 형상화된 우상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형상화하기 전에 먼저 마음에 우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음에 있는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 우상입니다.
내가 보는 것 같지만, 내가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봅니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봅니다. 관심 없는 것을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계속 봅니다. 욕망하는 것을 본다는 것은 자신의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은 영상 시대입니다. 미디어의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강하게 영향을 끼칩니다.
보는 것을 방치하면, 뇌에 박혀버립니다. 어린아이의 머리에 영상이 박혀버리면, 아이의 일평생 지워지지 않습니다.

미디어 시대에는 보여주는 것이 범람합니다. 가까이에서 우리를 유혹합니다. 슬쩍 훔쳐본 것이 일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보는 것에 마음을 점령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문화는 굉장히 자극적입니다. 정신을 빼앗아갑니다. 그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번만 봐도 박살 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조금만 허용해도, 마음을 점령당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지배당할 수 있습니다.
정욕과 눈은 연결되어있습니다. 보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강력하게 오염시킵니다. 그러므로 선별해서 봐야 합니다. 매 순간 선택해야 합니다.

셋째,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4절에 보면,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은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마음에서 말이 나갔지만, 말하는 순간 말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마음이 구부러졌기 때문에 구부러진 말을 합니다. 구부러진 말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구부러진 길을 가게 합니다. 폭력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폭력적으로 행동합니다.
이처럼 말은 마음에 영향을 끼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쏟아붓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자신의 말을 쏟아붓습니다.
대화할 때에는 상대방과 내가 말하는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말하는 간격이 없습니다.
말하는 간격이 없다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대화가 아닙니다. 자기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폭력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침묵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할 때에는 믿음의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말에 힘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도 믿음의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도 믿음의 언어로 축복해야 합니다. 자신감을 심어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말한 것은 돌에 새긴 것과 같습니다. 쉽게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말이 일평생 그 아이를 이끌고 갑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축복의 말을 해야 합니다. 희망을 가지게 해야 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넷째, 발을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잠언 4장 26~27절에 보면,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발이 어디로 가는가를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행동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합니다. 어둠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봉사하는 자리로 가야 합니다. 낮은 자리로 가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어두운 곳으로 가지 말고, 욕망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바꿔주십니다.

마음을 바꾸는 것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마음은 눈과 귀, 입과 발 등 모든 영역과 연결되어있습니다. 어느 한쪽에라도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영향을 받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고 대충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삶의 전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점검하고 훈련하고 다듬어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음을 수시로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관련된 것에만 관심을 가집니다. 몸도 중요하지만,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시기심이 생겼을 때, 그 시기심이 축복으로 바뀌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마음과 씨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바꾸어주십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마음에 청진기를 갖다 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숨겨져 있는 것이 말씀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화날 때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다가 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 앞에 굴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를 내어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평생의 작업입니다. 말씀을 꾸준히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이 아닌 것은 끄집어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가실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 중심에 오셔야 삶의 주인이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삶의 주인이 되실 때, 우리는 새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마음의 보좌에 앉아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삶을 이끌어가시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마음의 주인입니까? 자아가 삶의 중심에 있으면 불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마음이 준비되어있으면, 하나님의 부르심에 언제든지 반응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변화를 받아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기경되고 치유되고 변화되어서 여러분의 마음에 하나님의 은혜가 폭포수처럼 흘러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마음껏 사용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