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성경 말씀

또 다른 두 행악자도 사형을 받게 되어 예수와 함께 끌려 가니라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TODAY 설교 요약

■ 제목 : 용서로 나아가는 길
■ 본문: 누가복음 23:32-34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십자가 자체가 용서를 위한 것이었지만, 기도는 그 절정이었다. 예수님은 완전히 용서하셨다.

인간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채 죄를 짓는다. 어둠 속에 있기 때문이다. 죄 속에 뒹굴며 끊임없이 죄를 짓는다. 그래서 죄는 반드시 용서받아야 한다.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죄가 있다. 우리가 늙고 죽는것, 사람들과의 불화, 수많은 고통의 원인이 죄 문제다. 신앙도 죄 문제 해결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앙이 깊어질 수 없다.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죄의 파괴력은 대단하다. 우리는 죄에 끌려다닌다.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그래서 죄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다. 우리 내면을 교란시킨다. 삶을 망가뜨리는 실체가 죄다.

죄 문제는 다른 어떤것보다 먼저 해결해야 한다. 그렇다면 죄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용서다.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야 한다. 죄를 가볍게 취급하지 말라. 분명한 용서 경험이 필요하다.

세상은 죄를 축소시킨다. 죄를 다루지 않는다. 죄를 지어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만든다. 아니, 세상은 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다.

십자가는 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십자가에 아들을 매다신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죄를 그냥 간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죄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

죄는 심판을 받는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신다. 작은 죄도 놓치지 않으신다. 십자가 앞에서 우리는 죄의 심각성을 봐야 한다.

모든 죄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으면 죄를 지을 수 없다. 다윗의 범죄도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만 범한게 아니다. 자세히 보면 모든 계명을 어긴 것이다.

대충 넘어가도 되는 작은 죄는 없다. 별로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간다 생각하고 있는가? 그 말은 죄를 짓지 않는게 아니라 죄 인식이 약한 것이다. 죄인은 원래 오리발을 내민다. 죄 감각이 무뎌지면 안된다.

나병이 무서운 이유가 무엇인가? 암이 왜 무서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죽이기 때문이다. 죄도 비슷하다. 작은 죄는 없다.

문제는 우리에게 죄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죄를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이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이 아들을 죽일 이유가 없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의 최고, 최대 사건이다.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 하나님이 아들을 내어놓으셨다. 이것은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과 같다. 자녀를 둔 부모는 안다. 그렇게라도 죄 문제를 해결하기 원하셨다. *마태복음 1장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들의 죄에서’라는 표현을 보라. 그리스도는 자신의 죄가 아닌,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오셨다. 마틴 루터는 이것을 깨닫기 위해 괴로워하며 몸부림쳤다. 십자가로만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유일한 길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너무 간단하게 생각한다. 생각해보라. 사람이 자기 아들을 내놓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자기 집에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 내놓는 것도 어렵다. 그럼에도 죄 없으신 하나님이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들에게 모든 죄를 돌리신 것이다. 아들을 죄인 중의 죄인으로 몰아버리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죄를 그가 친히 담당하게 하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 은혜로 우리가 살았다. *이사야 53장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십자가의 은혜는 ‘죄 용서의 은혜’다. 우리의 죄를 완전하게, 깨끗하게, 용서해주셨다. 죄의 댓가에 대한 완전한 지불이었다. 우리가 받을 심판은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내 죄의 심각성을 깨달아야 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죄 덩어리로 가득하다. 마치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서 손쓸 수 없는 상태와 같다. 내가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 신앙의 출발점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에 출석하는 종교인이 된다. 신앙적 관습에 의해 마당만 밟을 뿐이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야 한다.

나를 향한 완전한 용서, 영원한 용서를 마주하라. 이것은 세상이 말하는 용서와 비교할 수 없다.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해방시킨 사건이다.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 용서의 경험을 가져야 한다.

죄에 몸서리쳤던 시간이 있는가? 죄 용서를 받고 전율한 경험이 있는가? 그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 모두 죄 사함의 은혜를 누리기를 축원한다.

죄 용서의 경험은 작은 체험이 아니다. 암이 열번 치유되는 것보다 훨씬 큰 체험이다. 우리 영혼 안에 겹겹이 쌓인 응어리가 풀어지는 경험이다. 그러면 죄로 인해 찾아온 근원적인 불안이 사라진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존재론적 불안과 허무가 있다. 용서를 받아야 해결할 수 있다. 용서로 반복되는 삶의 절망으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용서의 기쁨이 샘솟는 감격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용서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용서 받은 사람은 용서가 무엇인지 안다. 용서의 힘을 안다. 그래서 용서 받은 자는 용서할 힘을 갖게 된다.

세상이 살벌한 이유가 무엇인가? 용서가 없기 때문이다. 인류는 보복의 역사다. 가혹한 처벌을 한다. 우리도 자신에게는 관대하시지만, 남에게는 엄격하다. 내로남불. 죄인의 특성이다. 모두 손가락질만 한다.

오직 참된 용서를 경험한 사람만 남을 용서할 수 있다. 용서는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용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용서하지 못한 삶 자체가 지옥이다. 가정에도 용서가 없으면 지옥 같은 곳이 된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는 남을 용서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용서를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어설픈 용서는 더 큰 아픔을 만든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고 있다. 용서하지 못할 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사랑을 만나지 못하면 인간은 남을 용서할 수 없다.

요셉은 예수님의 용서를 보여준다. 그는 용서하지 못하는게 당연한 인생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용서했다. 일반적인 모습과 전혀 다르다. *창세기 50장 19.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요셉은 두려워 떠는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이미 형들을 용서했다. 원망과 분노가 남아있지 않다. 대신, 그는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라고 말한다. 원수를 대하는 태도다. 원수는 하나님이 처분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서려고 하면 안된다. 요셉은 일찍이 형들을 하나님께 맡겼다. 용서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요셉은 총리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을 것이다. *창세기 50장 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의 관점은 놀랍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안다. 사람과 사건에 집중해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다. 요셉은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하나님을 바라봤다.

불행한 사람은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산다. 무엇을 하든지 미워하는 사람만 생각한다. 모든 시간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쏟는다. 자기 감정에 빠진다. 그러면 불행의 늪에서 죽어간다. 빠져나와야 한다.

요셉을 보라. 그는 형들을 오히려 선대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다. 용서를 통해 구원의 거대한 역사가 일어났다. 용서는 축복을 가져온다. 용서 안에는 비밀이 있다.

적극적인 용서가 필요하다. 해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다. 축복해야 한다. *마태복음 5장 44.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는 인간관계로 마음이 다치기 쉽다. 몸이 아프면 진찰하면 되는데 마음이 닫히면 잘 안보인다. 그러면 그냥 살다가 인생 전체가 망가진다.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의 병이 커진다.

원수와의 관계를 해결해야 마음에 중병이 생기지 않는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이미 마음에 암이 생긴 것이다. 요셉은 달랐다. 그는 형들을 이미 용서하고 품었다. 이런 삶이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의 섭리를 보는 눈이다.

인간적으로 보면 요셉은 복수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봤다. 형들의 악행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크다는 것을 알았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며 모든 것을 맡겼다.

영적 시야를 열어야 한다. 그래야 나를 힘들게하는 사람이 있어도 담대할 수 있다. 십자가를 통해서 가능하다. 십자가에서 눈뜰 수 있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복음을 선명하게 알기에 충분히 가능하다.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를 통과하라. 그러면 용서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의 좁은 가슴이 열린다. 십자가를 통해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충분히 보여주셨다. *요한복음 3장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십자가 안에 들어가면 우리의 인간성이 변화된다. 세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용서를 가능하게 만든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응어리들을 풀어낸다. 관대하게, 너그럽게, 부드럽게 우리를 바꾼다.

용서가 축복이다. 용서는 신적인 삶이다. 용서는 우리를 자유하게 만든다. 악인에게 매여있는 삶에서 놓임받는다. 용서로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된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의 참혹함, 비참함 외에도 ‘부당함’이 있다. 그는 죄가 전혀 없는데도 십자가를 지셨다. 억울하지 않았을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삶에 억울함이 있는가? 부당함이 있는가? 십자가 앞에 나아가라. 예수님보다 내가 더 억울할까? 주님은 억울함을 호소하지 않으셨다. 우리를 용서하기 위해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셨다.

예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용서의 삶을 살라. 그것이 우리를 위한 길이다. 용서의 최대 수혜자는 용서하는 사람이다. 용서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다.

용서의 현장에 주님을 모셔오라.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다. 분노와 분노로 삶을 망가뜨리지 말라. 용서를 일상으로 만들라. 용서 받고 용서하라.

세상은 전쟁터다. 승리는 오직 십자가를 통한 용서로만 가능하다.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용서함으로 십자가를 알게 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용서할 때 참 자유를 누리게 된다.

내가 누군가를 용서해줌으로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라. 아직 용서하지 못하고 산다면 하나님의 용서를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용서는 관대함을 넘어 더 큰 베품으로 나아가야 한다. *로마서 12장 20.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것이 복음이다. 이런 용서를 우리가 받았다. 이제는 이 용서를 세상에 반영해야 한다. 용서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용서의 씨앗을 뿌리며 살면 삶이 풍성해질 것이다.

평화와 기쁨, 치유가 있을 것이다. 이번 고난주간에 용서를 베풀라. 공동체 안에 관계를 해결하라. 십자가 앞에 나아가 용서의 은혜를 누리라.

*묵상 질문

⁃ 당신에게는 용서 받은 경험이 있나요? 주님의 용서에 기쁨의 눈물을 흘린 경험이 있나요? 로마서 8장 1절, 2절을 읽어봅니다.

*로마서 8장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혹시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나요?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늘 말씀을 들으며 용서를 실천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 용서의 기쁨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말씀이 어떻게 다가오나요?

*묵상 찬양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네

주님 마음 내게 주소서

 

TODAY 은혜의 한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