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AY 성경 말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TODAY 설교 요약

■ 제목 : 고난에서 승리로 나아가는 길
■ 본문: 히브리서 2:18, 5:8-10

십자가를 깊이 경험한 사람이 믿음으로 살 수 있다.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십자가의 의미를 다 알 수 없다. 십자가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너무도 풍성하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강자의 이미지가 없다. 세련되고 멋짐도 없다. 그것이 기독교다. 연약해보이는 그리스도다. *이사야 53장 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너무나 연약하고 볼품없는 모습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연약해보이는 예수를 따라가는가? 성육신의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는 인간의 고통을 아신다.

완전한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지고 계셨다. 때론 피곤했고 목말랐고 눈물도 흘리셨다. 인간의 육체를 입은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를 위해 육신을 입고 고난 받으셨다.

예수는 우리의 고통을 안다. 그래서 기독교는 고통에 대한 많은 답을 가지고 있다. 고난의 전시장과 같은 세상을 살 힘을 준다. 고난의 풍랑에 떠내려가지 않을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난의 순간에 질문한다. ‘하나님, 당신은 이 고통을 아십니까?’ ‘하나님, 당신은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앞에서 절망한다.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진짜 고통은 고통의 원인을 모를 때 커진다. 그럴때 우리는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십자가는 다르게 보인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은 고통을 아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고통의 절정에 도달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다. *히브리서 2장 18.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고난을 아신다. 고난 속에 있는 우리를 충분히 도우실 수 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겪으셨다. 그가 겪으신 고난은 깊고 다양하고 광범위하다.

십자가는 처절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었다. 마취 없이 수술해 본 경험이 있는가? 손/팔목에 못이 박혀 달려있는 고통을 아는가? 죄가 없는 분이 죄인이 되어 십자가를 지는 억울함을 아는가? 대낮에 벌거벗겨져 대로에 세워진 적 있는가?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해본 적 있는가? 채찍에 맞아 피흘려본 적 있는가? 뺨을 맞아본 적 있는가? 침 뱉음 당해본 적 있는가? 조롱당한 적 있는가? 범죄자로 내몰려 본 적 있는가? 가장 높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리로 떨어져본 적 있는가?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적 있는가? 자녀를 잃어본 경험이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이다. 이외에도 십자가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십자가는 인류의 모든 고통이 들어있다. 고독과 멸시와 배신과 천대와 아픔이 모두 응축되어 있다. 우리는 이 중 하나만 겪어도 우리는 못산다 말한다. 나만 이런 고통을 겪는다 생각한다. 그러나 아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고통을 미리 당하셨다. 그 분은 우리 현실과 동떨어진 분이 아니다. 고통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십자가를 바라보라. 성경은 땀과 피로 흥건해져 우리 고통 가운데 뛰어들어오신다.

예수는 고난에 대한 이론과 지식을 제공하는 분이 아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다. 나의 고난 가운데 그 분이 계신다. 사람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내 아픔을 아신다. 내가 힘들다 말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우리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다 알 수 없다. 이해가 안된다. 그러나 주님은 아신다. 우리를 도우실 수 있다. 내가 처한 고통의 자리에 찾아오신다. 십자가의 예수는 지금 여기 계시는 하나님이다. *히브리서 4장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16.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동정하신다. 공감하신다. 우리와 강력한 공감대를 가지고 계신다. 같은 처지가 되어 우리를 위로하신다. ‘당신도 아시는군요’ ‘나와 같은 아픔이 있군요’

주님의 고난은 우리의 고통보다 크다. 십자가의 고통보다 큰 것은 없다. 차원이 다르다. 그 고통은 인간의 경험과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성령께서 도우신다. 성령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난 중에 있는 분이 있는가? 사람을 찾아다니며 위로를 구하지 말라. 도움이 안된다. 성령께 나아가라. 그 분을 통해 고난의 깊은 교감을 누릴 수 있다. 그때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다.

십자가는 광범위하다. 우리의 모든 아픔을 치료하실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야곱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한다. 왜 야곱인가? 파란만장한 인생에 함께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패에 찾아오신다. 우리가 의문을 가지고 질문하면 답을 주신다. 그래서 대개 인생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만난다. 고통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간다.

우리는 실패가 아니면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실패의 순간에 그리스도를 만났다면 축복이 된다. 십자가는 길을 잃지 않게 만드는 이정표가 된다.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다.

우리 삶에는 고난이 계속된다. 그때 우리는 고난에서 쉽게 빠져나가려 한다. 그러면 위험하다. 고난 없는 곳은 없다. 성경은 고난을 통과하라고 말한다.

세상 사람들은 고난을 홀로 겪다 절망하고 끝난다. 함께할 누군가가 없다. 각자의 고난이다. 홀로 무너져버린다. 고통이 크면 이겨낼 길이 없다. 병이 된다. 세상이 갈수록 험해지니 더욱 정신적으로 아파하고 있다.

마음의 면역력이 있어야 한다. 마음이 무너지면 육체도 무너진다. 신경성 질환자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면역은 무엇인가?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 삶에 찾아온 모든 고난을 이길 힘을 주고도 남는다. 고난을 통해 오히려 우리는 더 깊어지게 된다. 고난 자체에 몰두하지 말고 고난을 재해석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때로는 답 없이 사는 법을 익혀야 한다.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모습이다. 고난의 잔이 쉽지 않지만, 그리스도는 그 쓰디쓴 잔을 받으셨다. 그래서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서 부활이 일어났다. *로마서 8장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을 안다. 그 분은 선하시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 고난은 고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절망이라 말하는 그곳에서 하나님은 새 일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으면 유익하다. 고난에 끌려다니지 않을 힘이 우리에게 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 고난을 통과하면 된다. 영혼이 견고해진다.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히브리서 5장 8.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은 고난의 끌로 명작을 만드신다. 고난을 통해 말씀을 더 굳게 붙들게 하신다. 평안할 때는 말씀이 귀에 안들어온다. 그러나 고난은 세상의 헛된 것을 내려놓게 만드신다.

고난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아프면 인간은 무능해지기 때문이다. 고난은 우리로 영원을 사모하게 만든다. 삶의 고난은 힘들지만, 그 때 영혼을 가장 좋은 상태가 된다.

십자가의 주님과 함께한다면 고난은 유익하다. 그리스도인은 고난을 먹고 산다. 고난을 먹으며 성숙해진다. 고난에 짓눌려 살지 않고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게 만든다.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한다. *마태복음 16장 24.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제자의 삶은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르다. 자아 인정, 자아 실현과 반대되는 삶이다. 좁은 길이다. 쉬운 길은 우리의 길이 아니다.

길을 고민하고 있다면 좁고 어려운 길을 선택하라. 편한 길, 내가 원하는 길은 주님의 뜻이 아니다. 쉽게 예수 믿고 싶은 유혹에 넘어가면 안된다. 세상의 악한 문화에 저항해야 한다.

쉽고 편안하게 십자가를 지는 길은 없다. 십자가는 무겁다. 힘들다. 고난이다. 시간이 갈수록 고난이 없다면 잘못된 길이다. 조국 교회에 만연한 편의주의는 십자가에서 멀어졌다는 증거다.

새벽기도가 사라졌다. 철야기도의 야성도 사라진지 오래다. 봉사할 사람들이 없다. 심각한 문제다. 신앙생활이 가벼워지면 안된다.

십자가의 길은 낮아지는 것이다. 더이상 낮아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가야 한다. *빌립보서 2장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것이 십자가다. 세상은 높아지려 하지만, 십자가는 낮아지려 한다. 섬기려면 힘을 빼야 한다. 자기를 비워야 한다. 한국 교회는 더 낮아져야 한다. 최고로 겸손해져야 한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떨어진다. 다른 사람이 세워진다고 올라가지 말라. 때론 낮아져서 무시받아도 된다. 욕먹어도 괜찮다. 아무도 몰라주면 행복해하라. 그게 진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음이다. 자아가 죽고, 욕심도 죽고, 나의 꿈과 계획도 죽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드러내려는 욕망과 싸우며 날마다 죽어야 한다. 일종의 순교다. 순교는 가까이서 시작된다.

길을 벗어난 사람은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만 살려주신다.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한다. *요한일서 2장 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17.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우리의 시선을 영원에 둬야 한다. 고난을 끝날 것이다. 영원한 고난은 없다. 무가치한 것들에 시간과 정욕을 낭비하지 말라. 시선을 분산시키려는 것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고난이 있는지 없는지는 핵심 주제가 아니다. 고난은 언제나 있다. 답이 없는 고난도 많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고난 받을 것인가?’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 삶의 방향을 재조정해야 한다.

깊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온 몸을 내어놓은 것을 믿는다면, 우리도 대충 살면 안된다. 십자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노으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 위해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고난에 맞서라. 우리를 부르신 소명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믿음으로 살라. 고난에만 부딪히며 살다 끝나면 허망한 인생이다. 고난을 무시하고 언제나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 된다. 그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묵상의 소재로만 머물면 안된다. 그의 손과 발의 상처를 만져봐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고난에 매몰되지 말라. 삶으로 십자가를 담아내라.

십자가를 경험한 신자는 순교적 영성을 가지고 있다. 야성적이다. 적극적이다. 기꺼이 고난 받는다. 당신은 어떤가? 십자가를 지고 있는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질 때, 부활의 승리가 있을 것이다.

*묵상 질문

⁃ 지금 당신의 고난을 십자가에 대입해보세요. 주님이 그 고통을 아신다고 느껴지나요? 나의 고통 한가운데 찾아오시는 주님을 신뢰하시나요?

⁃ 십자가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고난에 굴하지 않고 영원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은 어떤가요? 십자가를 질 수 있나요?

*묵상 찬양
공감하시네

십자가 십자가

 

TODAY 은혜의 한 줄